동아시아의 자유언론


주간 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 힐데브란트

2005.06.23

이번 순서는 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시간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라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의 설립자 라이너 힐데브란트씨를 기리는 십자가

사진- RFA/ Juretzko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Mauermuseum House Am Checkpoint Charlie)의 설립자 힐데브란트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립니다.

독일 베를린시 한복판에 있는 프리드리히 거리 (Friedrichstrasse)는 미군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가 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서 89년 철거될 때까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이어주는 몇 안되는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이 검문소 자리 근처에 들어선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은 독일이 통일된 후 베를린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한해에 60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장벽 박물관(Wall Museum)으로도 알려진 이 박물관은 1962년에 처음 문을 열고 베를린 장벽이 낳은 갖가지 비극과 동독 국경수비대의 만행을 자료로 모아 전시했습니다. 또 동독 난민들이 탈출할 때 실제로 썼던 소형 자동차와 열기구 풍선, 소형 잠수정 같은 각종 장비들도 전시됐습니다.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은 동독 난민들의 탈출을 돕는 사람들의 본부로도 쓰였습니다. 이 박물관을 세운 라이너 힐데브란트 (Rainer Hildebrandt)씨는 동베를린 사람들의 탈출을 돕겠다는 사람들을 모아 계획을 짜고, 탈출에 성공한 동독 사람들이 서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힐데브란트씨는 작년에 90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미망인 알렉산드리아 힐데브란트씨의 말입니다.

Ms.Hildebrandt: 남편은 탈출을 돕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댔습니다. 예를들어, ‘터널 57’이라고 불리는 터널을 베를린 장벽 밑으로 파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작업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남편이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이 터널을 타고 57명의 동독 사람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남편에게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들한테는 우리 박물관이 말하자면 첫 번째 자유의 집이었던 겁니다.

그동안 남편의 이름만 들었는데, 직접 만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이들에게 서독에서 정착하는데 쓰라고 돈도 주고 직장도 알아봐줬습니다.

힐데브란트씨의 얘기가 알려지면서, 그에게 편지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여기에 당황한 동독 당국은 힐데브란트씨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어떻게든 그를 제거하려고 애썼습니다.

Ms. Hildebrandt: 남편은 동독에 직접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동독 보위부에서 남편을 붙잡으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죠. 보위부는 서베를린으로 몰래 사람을 보내서 남편을 세 번이나 납치하려고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동독 보위부 요원들이 차 두 대를 동원해서 숲속을 산책하려는 남편을 납치하려고 한 적 있습니다. 다행히 미군 방첩대 (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가 이 계획을 미리 알고 남편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서 납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길거리에서 남편을 납치하려는 시도가 두 번 더 있었는데요, 그 때마다 역시 미군 방첩대가 남편을 경호해줘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방첩대는 남편을 24시간 보호하는 일을 맡았고, 서독경찰은 남편을 납치하려던 동독 보위부 요원들을 체포했습니다.

동독 사람들을 탈출시키는 데는 자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예술비평가였던 힐데브란트씨의 아버지와 화가였던 어머니는 소중히 간직하던 예술품들을 팔아서 힐데브란트씨를 도왔습니다. 힐데브란트씨 자신도 저술활동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힐데브란트씨의 얘기를 듣고 성금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는 유레츠코씨는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이 세워질 때부터 힐데브란트 부부와 알고 지내왔습니다. 유레츠코씨도 힐데브란트씨의 활동을 도왔던 사람입니다.

Juretzko: 힐데브란트씨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인권을 유린하는 동독 정권에 맞서 싸웠던 겁니다.

힐데브란트씨가 제게 한 말 중에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때가 1987년이었는데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전이었죠. 힐데브란트씨는 제게 동독 정권은 썩은 기초위에 지어진 건물과 같다면서, 언젠가 동독 정권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날 세상은 깜짝 놀랄 거라고 했습니다.

힐데브란트씨의 도움으로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서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힐데브란트씨가 운영하는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을 둘러본 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들은 편지로 힐데브란트씨에게 이런 결심을 설명하면서, 북한과 중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필 수 있도록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고 합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의 설립자 힐데브란트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김연호기자